마지막 진료는 여행을 다녀오기 전이었다. 여행의 기간이 10일이었고, 그 후에 바로 진료 예약을 해 두었는데 한국으로 돌아온 후 바로 성당 엠티를 갔고 그 후에 감기에 걸렸다. 몸이 으슬으슬 하고 콧물도 났는데 코로나 검사 결과는 음성이었다. 여행지에서 구매했던 감기약을 먹으며 증상을 가라앉히고 따뜻하게 지내다 보니 일주일 정도 지난 지금 감기 기운이 다 나았다. 여행을 다녀온 직후엔 난 이제 더 이상 병원을 가지 않아도 될 것 처럼 느껴졌다. 여행지로 떠나면서 나의 걱정 불안도 다 내 방 침대에 놓고 떠났기 때문이다. 여행지에 가서는 한국의 일상에 관련한 아무 것도 떠올리지 않았다. 늘 잠에 들지 못했는데 여행지에서는 하루 종일 돌바닥 위를 걸어다녀서 인지 호텔방에 들어가자마자 잠이 들기 일쑤였고 꿈도 꾸지 않고 푹 잤다. 꿈을 꾸더라도 기분나쁜 꿈도 전혀 아니었다. 한국에 돌아와서 이삼일 동안은 한시 넘어까지 잠이 안오는 것에 대해 시차적응이 잘 안되서 그런거라고 생각했는데 점점 시간이 갈 수록 잠 드는 시간이 늦어지고 있다. 새벽 세 시는 되야 잠이 올락 말락 한다. 그 때도 정신이 맑으면 탄수화물로 된 음식들을 찾아 꺼내 먹는다. 밥을 데워 먹는 다던지 냉장고에 있는 쿠키를 꺼내먹는다던지. 그러면 포만감이 들면서 잠이 들긴 하는데, 아침에 일어나면 온 몸이 경직되는 것 같이 개운하지 못하다. 하지만 잠 드는 약을 먹으면서까지 약에 의지하고 싶지가 않다. 이건 나의 쓸 데 없는 고집일까? 하지만 약이 있어야만 잠이 들까봐 걱정된다. 그렇다고 지금 약 없이 잠이 드는 걸 한번이라도 성공하지도 못한다. 그리고 나는 혼자 있을 때 그 정적 속에서 자꾸만 머릿속에 여러 가지 생각들이 떠오른다는 것을 더 명확히 알게 되었다. 혼자 있으면 그 정적을 견디지 못한다. 그래서 음악을 틀까 하다가도 음악을 트는 데 까지도 오래 걸린다. 음악을 틀지 않고도 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높은 기대치를 나에게 부여한다. 음악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받으면 되는 건데 음악이 없어도 잘 지낼 수 있기를 바라는 게 욕심만 많은 것 같다. 다른 사람과 같이 있으면 부정적인 생각을 할 틈이 없다. 그 사람을 배려해서 어떻게 하면 상대를 편하게 할까 혹은 어떻게 하면 재밌게 함께 시간을 보낼 까 고민하기 때문이다. 내가 우울하고 불안해 한다면 상대방은 얼마나 기분이 가라앉을 지를 생각하다보면 너무 싫기 때문에 아예 부정적인 생각을 안 한다. 그런데 문제는 혼자 있을 때이다. 혼자 있기만 하면 타인을 생각하지 않아도 되니까 나 스스로를 엄청 괴롭힌다. 내가 나 스스로를 사랑하고 아껴준다면 나 혼자 있을 때에도 나의 기분을 좋게 만들기 위해 노력할텐데 그런 것 따위는 아예 배제시켜 놓고 사는 것 같다. 나도 혼자 있어도 마음이 평온할 권리가 있는데. 나 스스로 혼자 온전히 행복할 권리가 있는데 그걸 마음으로 이해하기가 어려운 것 같다. 자기를 존중하지 못하는 것 같다. 나는 나를 미워하고 있는 걸까? 이것을 해결할 수는 있는 걸까? 나 스스로를 사랑한다는 것이 어렵다. 그것은 뭔가 죄를 짓는 것 같기도 하고, 내가 즐거움을 느낀다면 그건 잘못된 것만 같다. 다른 사람이 행복하면 그걸로 편안한데, 나 스스로는 만족감을 느끼고 좋은 미래를 꿈꾸는게 과분하다고 생각한다. 분명 이게 가장 큰 문제일 것이다. 내 마음을 알아 주는 일에 최근 한두 달 정도는 소홀했는데 의사선생님의 조언대로 내 기분과 생각을 알아차려 주니 이런 문제점을 발견하게 되었다. 어렴풋이 알게되었던 것이 좀 더 명확해 진다. 글을 쓰는 것은 좋은 힘이 있다. 그리고 나는 내가 내 마음을 알아주는 이 과정을 온라인에 쓰는 이유를 잘은 모르겠다. 아무도 나를 모르지만 그래도 내 글을 보이고 싶은 걸까? 나는 늘 예술가로 살고 싶었는데 그것도 내 어떤 관념과 생각을 전시하고 싶은 나의 욕망때문일까? 나는 나를 드러내거나 앞으로 나서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고 늘 긴장하는데 내가 만든 창작물은 늘 멋지고 사람들에게 칭찬받길 원한다. 글이던 그림이던 친구들 사이에서 부르는 노래던. 그런 나를 인정해주고 사랑해주면 되는데 나를 자꾸 하찮게 여긴다. 그런 버릇을 버리고 싶다. 나를 내가 하찮게 여길 때 들려오는 목소리는 다양하고 반복적이다. 너는 성공해선 안 돼, 너는 그럴 자격이 없어. 넌 아빠가 이상한 사람이어서 너도 미움 받아 마땅해. 부모가 잘못하면 자식이 죄를 받아. 너는 그런 자식이지. 너는 죄를 없애기 위해 스스로 수련을 해야 해. 당연한 행복은 너에게 있을 수 없어. 죄를 씻어내야 해. 부모가 짓고 다니는 죄를 너가 다 씻어내야 해. 부모로부터도, 아빠로부터도 죄의 되물림을 의식하고 있는 것 같다. 그곳에서 완전히 벗어나고 싶은 생각, 그러나 핏줄이 이어져 있어서 완전히 해방되지 못할거라는 좌절감. 세상을 사는 동안은 어떤 끈으로 이어져 있을 거라는 믿음. 아빠를 위해 기도하는 마음도 다 그런 것들 때문일까. 나의 해방을 위한 상대의 해방을 원하는 것. 결국 나를 위한 기도. 어떤 것에서도 자유로워 지고 싶은 욕망, 그럴 수 없다는 좌절감. 그 사이에서의 갈등. 내가 해결할 수 있을까? 내 힘으로? 나는 무력하다. 그래서 매일 무너진다. 할 수 없을 것 같다. 나는 약한 존재이고 매일 무너진다.. 그래서 나를 사랑하고 나를 믿는 주변의 사람들에게 미안하다. 미안하고 미안하다. 그들에게도 죄를 짓는 것만 같다. 이렇게 약한 생각으로 살아가는 것 자체가 말이다. 강해지고 싶은데, 방법을 모르겠다. 진심으로 행복해지고 싶은데, 거리낌없이 기뻐하고 싶은데, 마음에 걸리는 것 없이 즐겁고 싶은데 늘 마음 한 켠에 남아 있는 삶 그 자체에 대한 죄의식. 잘못 태어난 생명체인것 같은 기분, 죄악덩어리인것 같은 믿음, 사랑받기엔 부족하다는 믿음, 그 마음들을 감추며 살아가야해서 힘듦. 이런 내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기쁨을 주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작품을 만들고 싶어 한다고? 퉤. 어림도 없지. 나 스스로를 매일 비웃는다. 그림을 그릴 수도 없고, 진지하게 글을 쓰는 것은 아주 오랜 시간동안 마음을 먹어야 가능할까 말까 하다. 내 친구들도 아는 내 다른 블로그에는 늘 장난스럽고 즐거운 일상들을 올린다. 그렇지만 내 썩어 문드러진 속은 아무에게도 말할 순 없다. 살아가는 고통을 내가 이겨내고 나서 나를 진정으로 사랑한 후에야 작품을 만들 자격이 된다는 강박증에 시달린다. 그리고 그건 사실 아닐까? 매일매일의 나를 이겨내는 것에 많은 에너지를 쏟고 있다.

- 오늘은 친한 언니가 집에 초대해 친한 동생과 함께 나의 브라이덜 샤워를 해 주었는데 이런 걸 받아 본 적도 예상한 적도 없어서 얼떨떨했다. 언니랑 동생이 오로지 나를 위해서 풍선도 준비하고 내가 좋아하는 연보라색 꽃으로 된 부케도 준비해서 예쁜 사진들을 많이 남겨주었다. 또 가리비와 생선 빠삐요트 요리랑 케이크에 화이트와인까지 너무 준비해준 것이 많아서 그 마음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고마웠다. 사실 가장 마음이 따뜻해졌던 순간은 언니가 뉴질랜드에 여행을 다녀와 그곳에서 산 엽서에 나의 결혼을 축하하는 마음을 담은 편지를 오늘 준 것이었다. 그 글을 읽는데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기분이 너무 가라앉아 있었는데 누군가 나를 생각해주고 이런 시간을 마련해주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감사했다. 왜 나는 이런 사람들이 곁에 있는데도 늘 어두운 생각을 하고 살았을까, 따뜻하고 좋은 시간을 겪고 나면 내가 흔하게 하는 생각이다.

- 부케 꽃다발을 화병에 꽂았다. 물을 매일 갈아주며 일주일 간 돌보다가 스스로 드라이플라워로 만들어보려고 한다. 실패하면 어쩔 수 없겠지만 꼭 간직하고 싶은 역대급 꽃다발이다. 드라이플라워 만드는 것을 성공한 적은 딱 한 번 있는데, 남자친구과 첫 데이트를 했을 때 남자친구가 준 꽃을 그늘에 잘 말렸더니 향기가 그대로 유지된 포푸리같은 드라이플라워가 되었다. 그래서 그걸 투명한 유리병에 넣어 리본을 묶어 보관하고 있는데 코를 갖다 대면 신기하게도 아직까지 진한 꽃향기가 난다.

- 닉네임을 '보라' 에서 '보라색'으로 바꾸었다. 보라 라는 것은 왠지 사람의 이름 같다. 보라색을 좋아해서 보라라고 지었지만 왠지 내가 다른 사람의 이름을 빌려 쓰는 기분이 들어 보라색이라고 바꾼 것이다.

사건-생각-감정

1.
사건: 분명 어젯 밤 아주 오랜만에 일찍 잠이 들어 기뻤는데 새벽에 깼다.
생각: 왜 이렇게 빨리 깼지? 역시나 푹 자는 건 불가능한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일 중에 하나인 잠 자는것조차 이렇게 힘들어야 하는걸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감정: 제대로 잠도 못자는 것이 억울했고, 서글펐다. 몸은 힘들고 피곤한데 푹 자고싶어도 잠이 안오는 것이 화가 나기도 했다.

2.
사건: 시식을 하러 갔다.
생각: 남자친구는 스케줄이 있어서 두번째 시식인 오늘은 혼자서 가야 했지만 그래도 우리의 일을 한다고 생각했고 잘 파악하고 와야지 라고 생각했다.
감정: 체크해야 할 사항들을 잘 체크하고 시식도 잘 끝내서 뿌듯했다.
*이 글을 다시 읽는데, 내가 정말로 결혼을 할 수 있는걸까 하는 의구심도 들었다. 다가오는 결혼식이 설레고 기분좋게 떨리는 게 아니라 결혼식을 아예 못 치르게 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불안감에 계속 휩싸여 있는 나 자신을 보게되었다. 왜 나는 긍정적인 미래를 믿지 못하는걸까? 나에게는 좋은 일이 올 리가 없다는 강력한 믿음이 나를 옭아맨다. 매일매일. 나는 그럴 자격이 없어, 너는 초라할거야 라는 목소리.

3.
사건: 청첩장을 전달하기 위해 ㄷㅅ님을 만났다.
생각: ㄷㅅ님과 오랜만에 만나 밝고 차분하고 긍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싶었다. 사람들과 대화할 때 어두운 표정이 드러나 불편하게 할까봐 걱정이 되는데 ㄷㅅ님을 만나기 직전에도 약간 걱정이 되긴 했다. ㄷㅅ님을 불편하게 하지 않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정: 밝고 텐션이 높은 모습은 아니더라도 차분한 모습을 유지하는 것에도 약간의 애를 써야한다는 것이 조금 버거웠다. ㄷㅅ님을 오랜만에 보아서 너무 반가웠다. ㄷㅅ님 얼굴이 생기있어 보여서 내 마음에도 활기가 생기는 것만 같았다. 평상시 내가 다운되어있는 모습을 들키면 상대방을 우울하게 만들까봐 안그런 척 하는 데 에너지가 들어가는게 억울했다.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편안하게 해주고싶었다. ㄷㅅ님과 있는 시간이 정말 소중하다고 느껴졌고, 오랜만에 만나는 만큼이나 좋은 모습으로 남고싶었다.

*ㄷㅅ님을 기다리면서 카페에서 쓴 글.
내가 요즘 떠나고싶구나. 왜 떠나고싶지? 난 항상 떠나고싶어했으니까. 그런데 내가 가고싶은 곳은 내 마음속에나 존재하는 것 아니야? 다른 나라에 그렇게 가고싶었던 이유는 이 현실이 싫어서 도망가고자 함이었다. 만약에 갔다면? 그리고 나는 지금도 언제든 떠날 준비가 되어있는데. 내가 도망치고 싶은 곳은 여기와 다를까?


결혼준비를 하며 양가에서 이런 저런 일들을 정하고 있다. 상견례 날짜, 장소, 혼주한복대여문제 등, 그리고 나와 남자친구는 각자 시식도 하고 같이 살 집도 알아보며 지내고 있다. 곧 떠날 신혼여행도 준비하는 동시에 친한 지인들을 만나 결혼식에 초대하기 위해 직접 청첩장을 주면서 맛있는 밥도 먹고 시간을 보낸다. 부케도 준비해야 하고, 피로연 때 입을 말끔한 원피스도 구입해야 한다. 집은 찾아보는 대로 바로 날짜를 맞춰 계약할 준비도 해야한다. 이런저런 일들이 많다. 나는 올해 안에는 전시도 열고 싶었는데 자신은 없다. 매년 이런식이다. 너는 절대 할 수 없어 너는 못해. 넌 하면 안돼 라는 목소리가 그림을 그리려 할때마다 들려온다. 그 목소리에 진 적이 더 많다. 정작 그림을 그리기 시작할 때는 아무 생각이 없을 때였다. 생각해보면 그랬다. 그냥 저걸 그리고 싶어 라는 생각이 들 때 손이 움직였고 책상앞에 이젤앞에 앉게되었던 것 같기도 하다.. 자꾸 거창한 계획을 세우고 깔끔하게 정리하려 하면 할수록 할 수 없다는 생각도 커져갔다. 결혼식이 끝나면 나도 새로운 터전에서 일을 다시 구해야 한다. 그것과 동시에 내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란 걸 만들어낼 수 있을까? 확신이 없다. 나는 못할 것 같다. 그리고 나는 세상에 내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두렵다. 작품은 꼭 내 이야기를 직설적으로 담지 않아도 되지만 어쨌든 작품을 통해 어떤 메세지는 전달될것이다. 그 매개체를 만든다는 것이 왜 두렵지. 왜 겁나지. 비웃음 당할 것 같지. 아니, 비웃으면 어때서. 나는 왜 숨고싶지. 못할 것 같지. 그것만이 전부라고 믿었었는데 왜 지금은 이렇게 초라하지. 그 세계 앞에서 왜 갈망하고 야망을 갖기를 포기해버렸지. 왜 좌절했지. 왜 평범하려 하지. 평범하려 하다가 평범 근처에도 못 가고 있는데. 왜 눈에 띄고싶지 않아하지, 그것도 절대로. 내 목소리를 죽이고있지. 왜일까. 너는 그러면 안돼, 그래 난 그래선 안돼 라는 목소리가 계속해서 마음과 머릿속에 들려온다. 그렇게 하면 넌 불행해져. 그렇게 하면 넌 죽을거야 라는 메세지. 하지만 동시에 너무나 원하는 마음. 이상하고 혼란스럽다.

오늘은 심리학 관련 영상을 시청하지 않았다. 한번 쭉 듣고 나면 다음날 연속으로 듣는 것이 조금 힘들어서 쉬어가야한다. 상담치료를 받고 나면 그 당일과 그 다음날 정도 까진 계속 기분이 우울하고 침체된다. 내가 했던 말들에 대해서 생각해보게된다. 그리고 나도 몰랐던 내 안의 이야기를 꺼내고 나서 그 문제와 하루 이틀 정도 계속 마주하게 된다. 그래서 더 괴롭나보다. 그렇지만 그 괴로움을 맞딱드리고 나면 내가 조금 더 성장하는, 성숙해가는 느낌이 든다. 잠깐이지만 내가 마치 성숙한 어른이 되는 것 처럼 느껴지고 그 기분이 좋다. 이런게 상담치료의 과정이고 효과인가 하는 생각이 오늘 잠시 스쳐갔다.

나를 아는 블로그에는 도무지 불편해서 쓸 수 없는 이야기들, 나조차도 마주하기 힘든 이야기들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은 이 공간에 써보려고 합니다. 처음에는 일기를 노트에 손으로 썼어요. 아침에 일어나 모닝페이지를 쓰기도 하고요. 모닝페이지는 감정의 찌꺼기를 적는 곳이라고 하잖아요? 그런데 내가 써놓고도 다시 읽고 싶진 않더라고요. 지금도 그 일기장을 통째로 태워버리고 싶어요. 그냥 떠오르는 감정을 마구잡이로 적기 보다는 나 스스로를 관찰해서 내면의 감정을 읽어내고 알아주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느꼈어요. 모닝페이지가 그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법은 없지만, 종이에 적는 다이어리는 왠지 불안해요. 내가 죽으면 누군가는 읽을텐데 말이죠. 그걸 죽기전에 태워버린다는 보장도 없고.. 물론 스스로 죽으려는 것은 아니지만요.

 

사건-생각-감정 순으로 매일매일 적어보려고 해요. 뇌부자들로 유명한 오동훈 선생님이 영상에서 감정일기 적는 법을 알려주셨더라고요. 제가 치료받고있는 병원의 저의 주치의 선생님께서도 오늘 저에게 일기를 적어보라고 하셨어요. 내 마음을 알아주는 일은 생각보다 중요한가봅니다. 한달 전까지는 나름 성실하게 손글씨로 일기를 적곤 했는데, 최근엔 그걸 나도 모르게 피하고 있었거든요. 선생님께서도 그 감정을 마주하는게 괴로워 회피하고 싶을 수는 있다고 하셨어요. 요즘들어 잠을 통 못자는데 그것도 감정을 회피했던 것의 영향일까요? 잘은 모르겠지만 오늘부터는 다시 성실히 써볼 수 있길... 나 스스로에게 어떠한 작은 기대도 할 수 없다는게 조금 슬프네요.

 

오늘의 사건(?)들 - 그 사건에서 든 생각 - 그 생각으로 인해 일어난 감정들

1. 어제 밤 4시에 잠들어서 아침에 겨우 일어나 통증이 가득한 몸을 이끌고 병원에 갔습니다. 저는 병원에 가기 전이면 일주일에서 이주일 내내 내가 어떤 것 때문에 힘들고 이런 저런 증상 때문에 힘들다는 것을 인지하고, 꼭 병원에 가면 말해야지 라고 다짐했다가도 그 순간이 지나면 다 까먹고 말아요. 그래서 막상 상담을 받으러 병원을 가는 날 아침이 되면 머릿속이 하얗게 되는 것 같습니다. 매번 진료실에 앉아 '어떻게 지내셨어요?'라고 물으시는 선생님 말씀에 저는 일단 잘 지냈어요 라고 대답해요. 그러다가 뜬금없이 나도 모르는 내 마음속 이야기를 툭 툭 꺼내놓게 됩니다. 오늘은 제가 참 많은 이야기를 했어요. 상담시간도 평소보다 더 길게 이어졌지만 귀찮은 내색 없이 다음 진료가 없으신 선생님께서는 저의 징징거림(이라고 표현하면 또 내가 나를 비하하는 것 같지만)을 받아주시고 그 말 속에서 나도 모르는 내 감정을 꺼내어 질문을 하셨습니다. 요즘 제가 느끼는 감정은 혼란스러움, 가족에게 특히 엄마에게 어떤 스탠스를 취해야할지 모르겠는 마음 등등 이래요. 이게 정답은 아닐 순 있어도 정답에 가깝다고 느끼는 이유는 그런 답을 들을 때마다 마음을 탁 치고 나는 느낌이 들기 때문입니다. 원인도 모른 채 답답하고 잠오 안오고 중압감에 시달렸던 것이 사실 이런이런 이유였구나 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지요. 오늘은 특히나 어릴 때 학대를 당했던 이야기들을 하게 되었는데 다른때보다 더 슬프고 억울한 감정이 올라왔습니다. 그와중에 내가 진료시간을 초과했다는 것이 신경쓰여서 다양하게 떠오르는 감정들을 정리해서 말하지 못했습니다. 사실 그런 언어능력이 요즘 많이 퇴화하기도 해서 구체적으로 설명하기보단 단순화된 표현을 사용하고 눈물은 잘 주체가 되지 않아요. 내 안의 수많은 감정을 구체적으로 파악해서 스스로 알아주는 연습을 해야겠다 하고 오늘 생각했습니다. 어릴때 뭘 하던 혼나던 기억들, 사랑받기보다 미움받고 욕을 들었던 기억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나를 사랑한다고 하는 엄마의 표현에 혼란스럽고 또 다시 기댔던 내 안의 어린아이, 절대적인 보호자에게서 떨어지고싶지 않았지만 그 보호자가 너무 무서웠던 나의 어린시절, 늙어가는 엄마, 지난날을 후회한다고 하는 엄마, 미안하다고 하는 엄마, 그렇지만 나를 여전히 진심으로 사랑하지는 않는 듯한 엄마, 내가 믿을 수 없는 엄마. 그 안에서 자책하고 원망하고 혼란스러워하는 내가 보입니다. 누구에게도 이 깊은 상처를 꺼낼 수는 없었어요. 그 누구도 이해해줄 것 같지 않았습니다. 아무에게도 못한 이야기가 입밖으로 나오니까 마음이 또 한번 후련해지고, 눈물도 흘릴 수 있어서 시원했어요.. 매일 이렇게 울 수만 있어도 좋겠다 싶었어요. 언제까지나 이렇게 힘들어야하고 울어야 할까 라는 생각도 들고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 동시에 내가 이런 부정적이고 어두운 감정을 아무리 의사라해도 타인에게 전해도 되는것일까? 하는 죄송한 마음이 듭니다.

 

2. 병원에 갔다가 일을 갔어요. 요즘 하는 일은 반복작업입니다. 하지만 작품을 만드는 데 동참한다는 것, 오랫동안 작품을 해오신 선생님의 작업방식을 옆에서 볼 수 있다는 것, 내가 서울에서 가장 좋아하는 동네에 작업실을 소유하고 있는 선생님의 공간에서 조수로 일한다는 것에 대리만족하면서, 내 가치관은 이 일에 전혀 투입시키지 않고 오로지 작품의 주인인 선생님이 하라시는대로만 하면 된다는 안락감을 느끼면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내 생각이 개입될 이유가 없어서 좋아요. 윗사람하고 갈등을 일으킬 일이 없거든요. 이 작품은 철저히 선생님의 작품이기 때문에 그분의 지시대로 해야만 하고, 그러지 않을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오히려 내 주관이 들어가는 순간 작품 주인의 권위를 해치게 되는게 명백하니까요. 노동집약적이고 단순 반복적인 작업을 하다보면 손이 아프기도 하지만 그 고통마저도 기꺼이 감내하게 됩니다. 나도 언젠가는 내 작품을 만들 수 있을까? 그런 목표는 나에게 아직도 더 의미가 있을까, 그런 꿈을 꾸는것이 나에게 아직 허락될까,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의사선생님께 말씀드린 대로 반복작업을 명상처럼 여기기 위해 이 일을 하면서 떠오르는 생각을 손끝의 감각에만 집중시키며 흘려보내는 연습을 해보았어요. 그라운딩을 하는 것처럼. 오늘은 병원에서 상담받은 후 궁금한 점들이 생겨 일을 하면서 한쪽 귀에 이어폰을 꽂고 김현옥 교수님의 유튜브 영상을 들었습니다. 차분한 목소리톤이 마음에 위안이 되었습니다. 정신과 상담을 받으면서 제 마음에 대한 이야기를 스스로 들어주는 것에 관심이 생기기도 했고 제 주치의 선생님이 초반에 권하신 대로 유튜브의 여러 정신건강의학 채널을 보기 시작하다 몇몇 채널은 구독도 하게되었지요. 제가 즐겨보는 채널은 지나영선생님, 최근은 김현옥 교수님, 뇌부자들 등등 입니다. 오늘은 김현옥 교수님의 트라우마에 관한 영상들을 들었어요. 과거에는 트라우마 치료를 할 때 기억을 꺼내 언어로써 상기시키고 치료하는 방법을 주로 사용했지만 요즘의 트라우마 치료 추세는 자신도 모르게 신체에 저장된 트라우마를, 신체 감각을 이용해 안정화시키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호흡법을 강조하셨어요. 오늘 오전에 제가 상담치료를 받을 때에 저는 선생님께 과거의 기억을 잊고싶다고 했고, 선생님은 '잊어야 할까요?'라고 반문하셨습니다. 잊는 것과 치료되는 것은 다른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드네요. 이미 일어난, 나에게는 중대한 그 일들을 잊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또 잊어서도 안되는 것이라고 일을 하며 생각했어요.

 

3. 일이 끝나고 피부과에 가서 1년 3개월 만에 엑셀브이 시술을 받았습니다. 병원에 가니 피부과 선생님께서 저에게 작년 6월에 받았었네요 라고 말씀을 해주시더라고요. 그때가 남자친구 부모님을 처음 뵙기 일주일 전 쯤이었어요. 평소에 피부에 붉은 자국이나 잡티 같은게 신경쓰여 더 깔끔한 이미지로 보이고 싶어 한번 받았던 적이 있네요. 엑셀브이는 3회에서 5회는 해줘야 효과가 나타난다는데 당시엔 연속으로 치료를 받을만한 여유가 훨씬 없었어요. 오늘은 총 3회짜리 결제를 하고 왔어요. 왜냐면 11월에 저는 결혼식을 하기 때문이에요. 받고싶어도 못받았던 때보다는 오늘 딱 3회차를 결제해버린 것이 훨씬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시술도 빨리 끝난 편이었어요. 집에 오자마자 샤워를 하고 감정일기 블로그를 개설했어요. 그런데 처음 써보는 것도 아닌 이 일기가 왜이렇게 어색할까요. 사건, 생각, 감정 순으로 적는 것도 잘 지켜지고 있는건지도 모르겠고요.. 초반에는 그걸 최대한 의식하며 적어봐야 습관이 될 것 같아요.

 

오늘은 잘 자고싶어요. 잠을 새벽까지 자지 못하면 다음날 손끝 발끝까지 온 몸이 아프거든요. 두드려 맞은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어릴때 수구려 앉아 온 몸을 몽둥이나 옷걸이, 나무 회초리 등 집히는 것들로 맞았던 것처럼요. 그때 내가 할수있는 것이라고는 회초리를 손으로 막다가 손가락 마디가 더 아팠던 것말곤 없었던 것, 울면 더 맞고 혼나서 울지도 못했던 것, 일그러지는 표정과 무력함, 나약함이 스스로를 파고들어서 작게 더 작아지게 만들었던 것, 온 몸이 너무 아팠던 것, 막지도 못해 당했다는 수치심이 온 몸을 감쌌던 것이 떠올라요. 어깨는 움츠러들고, 벽에 등을 꼭 붙이고 쪼그려 앉아 흐느끼다가 우는 소리라도 나면 다시 방안으로 들어와 나를 잡아먹을듯이 소리치며 울지 말라고 다시 혼내던 엄마의 모습, 공포에 질린 작은 아이였던 나, 아무도 도와주지 않고 그 누구도 없던 집, 설령 같이 집안에 있어도 텔레비전만 보던 아빠, 교육의 일환이라고 방치했던 모든 어른들, 그리고 외로웠던 나, 슬픈 감정을 말할 수 없던 나, 그것이 나를 위한 일이라고 정말 끔찍하게도 믿었던 나, 엄마가 회초리에 써놓은 사랑의 매 라는 말을 믿었던 나, 엄마를 너무 사랑했던 나, 불쌍한 어린 아이, 빼짝 마른 1학년, 그 아이를 오늘 더 안아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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