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아는 블로그에는 도무지 불편해서 쓸 수 없는 이야기들, 나조차도 마주하기 힘든 이야기들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은 이 공간에 써보려고 합니다. 처음에는 일기를 노트에 손으로 썼어요. 아침에 일어나 모닝페이지를 쓰기도 하고요. 모닝페이지는 감정의 찌꺼기를 적는 곳이라고 하잖아요? 그런데 내가 써놓고도 다시 읽고 싶진 않더라고요. 지금도 그 일기장을 통째로 태워버리고 싶어요. 그냥 떠오르는 감정을 마구잡이로 적기 보다는 나 스스로를 관찰해서 내면의 감정을 읽어내고 알아주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느꼈어요. 모닝페이지가 그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법은 없지만, 종이에 적는 다이어리는 왠지 불안해요. 내가 죽으면 누군가는 읽을텐데 말이죠. 그걸 죽기전에 태워버린다는 보장도 없고.. 물론 스스로 죽으려는 것은 아니지만요.

 

사건-생각-감정 순으로 매일매일 적어보려고 해요. 뇌부자들로 유명한 오동훈 선생님이 영상에서 감정일기 적는 법을 알려주셨더라고요. 제가 치료받고있는 병원의 저의 주치의 선생님께서도 오늘 저에게 일기를 적어보라고 하셨어요. 내 마음을 알아주는 일은 생각보다 중요한가봅니다. 한달 전까지는 나름 성실하게 손글씨로 일기를 적곤 했는데, 최근엔 그걸 나도 모르게 피하고 있었거든요. 선생님께서도 그 감정을 마주하는게 괴로워 회피하고 싶을 수는 있다고 하셨어요. 요즘들어 잠을 통 못자는데 그것도 감정을 회피했던 것의 영향일까요? 잘은 모르겠지만 오늘부터는 다시 성실히 써볼 수 있길... 나 스스로에게 어떠한 작은 기대도 할 수 없다는게 조금 슬프네요.

 

오늘의 사건(?)들 - 그 사건에서 든 생각 - 그 생각으로 인해 일어난 감정들

1. 어제 밤 4시에 잠들어서 아침에 겨우 일어나 통증이 가득한 몸을 이끌고 병원에 갔습니다. 저는 병원에 가기 전이면 일주일에서 이주일 내내 내가 어떤 것 때문에 힘들고 이런 저런 증상 때문에 힘들다는 것을 인지하고, 꼭 병원에 가면 말해야지 라고 다짐했다가도 그 순간이 지나면 다 까먹고 말아요. 그래서 막상 상담을 받으러 병원을 가는 날 아침이 되면 머릿속이 하얗게 되는 것 같습니다. 매번 진료실에 앉아 '어떻게 지내셨어요?'라고 물으시는 선생님 말씀에 저는 일단 잘 지냈어요 라고 대답해요. 그러다가 뜬금없이 나도 모르는 내 마음속 이야기를 툭 툭 꺼내놓게 됩니다. 오늘은 제가 참 많은 이야기를 했어요. 상담시간도 평소보다 더 길게 이어졌지만 귀찮은 내색 없이 다음 진료가 없으신 선생님께서는 저의 징징거림(이라고 표현하면 또 내가 나를 비하하는 것 같지만)을 받아주시고 그 말 속에서 나도 모르는 내 감정을 꺼내어 질문을 하셨습니다. 요즘 제가 느끼는 감정은 혼란스러움, 가족에게 특히 엄마에게 어떤 스탠스를 취해야할지 모르겠는 마음 등등 이래요. 이게 정답은 아닐 순 있어도 정답에 가깝다고 느끼는 이유는 그런 답을 들을 때마다 마음을 탁 치고 나는 느낌이 들기 때문입니다. 원인도 모른 채 답답하고 잠오 안오고 중압감에 시달렸던 것이 사실 이런이런 이유였구나 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지요. 오늘은 특히나 어릴 때 학대를 당했던 이야기들을 하게 되었는데 다른때보다 더 슬프고 억울한 감정이 올라왔습니다. 그와중에 내가 진료시간을 초과했다는 것이 신경쓰여서 다양하게 떠오르는 감정들을 정리해서 말하지 못했습니다. 사실 그런 언어능력이 요즘 많이 퇴화하기도 해서 구체적으로 설명하기보단 단순화된 표현을 사용하고 눈물은 잘 주체가 되지 않아요. 내 안의 수많은 감정을 구체적으로 파악해서 스스로 알아주는 연습을 해야겠다 하고 오늘 생각했습니다. 어릴때 뭘 하던 혼나던 기억들, 사랑받기보다 미움받고 욕을 들었던 기억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나를 사랑한다고 하는 엄마의 표현에 혼란스럽고 또 다시 기댔던 내 안의 어린아이, 절대적인 보호자에게서 떨어지고싶지 않았지만 그 보호자가 너무 무서웠던 나의 어린시절, 늙어가는 엄마, 지난날을 후회한다고 하는 엄마, 미안하다고 하는 엄마, 그렇지만 나를 여전히 진심으로 사랑하지는 않는 듯한 엄마, 내가 믿을 수 없는 엄마. 그 안에서 자책하고 원망하고 혼란스러워하는 내가 보입니다. 누구에게도 이 깊은 상처를 꺼낼 수는 없었어요. 그 누구도 이해해줄 것 같지 않았습니다. 아무에게도 못한 이야기가 입밖으로 나오니까 마음이 또 한번 후련해지고, 눈물도 흘릴 수 있어서 시원했어요.. 매일 이렇게 울 수만 있어도 좋겠다 싶었어요. 언제까지나 이렇게 힘들어야하고 울어야 할까 라는 생각도 들고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 동시에 내가 이런 부정적이고 어두운 감정을 아무리 의사라해도 타인에게 전해도 되는것일까? 하는 죄송한 마음이 듭니다.

 

2. 병원에 갔다가 일을 갔어요. 요즘 하는 일은 반복작업입니다. 하지만 작품을 만드는 데 동참한다는 것, 오랫동안 작품을 해오신 선생님의 작업방식을 옆에서 볼 수 있다는 것, 내가 서울에서 가장 좋아하는 동네에 작업실을 소유하고 있는 선생님의 공간에서 조수로 일한다는 것에 대리만족하면서, 내 가치관은 이 일에 전혀 투입시키지 않고 오로지 작품의 주인인 선생님이 하라시는대로만 하면 된다는 안락감을 느끼면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내 생각이 개입될 이유가 없어서 좋아요. 윗사람하고 갈등을 일으킬 일이 없거든요. 이 작품은 철저히 선생님의 작품이기 때문에 그분의 지시대로 해야만 하고, 그러지 않을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오히려 내 주관이 들어가는 순간 작품 주인의 권위를 해치게 되는게 명백하니까요. 노동집약적이고 단순 반복적인 작업을 하다보면 손이 아프기도 하지만 그 고통마저도 기꺼이 감내하게 됩니다. 나도 언젠가는 내 작품을 만들 수 있을까? 그런 목표는 나에게 아직도 더 의미가 있을까, 그런 꿈을 꾸는것이 나에게 아직 허락될까,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의사선생님께 말씀드린 대로 반복작업을 명상처럼 여기기 위해 이 일을 하면서 떠오르는 생각을 손끝의 감각에만 집중시키며 흘려보내는 연습을 해보았어요. 그라운딩을 하는 것처럼. 오늘은 병원에서 상담받은 후 궁금한 점들이 생겨 일을 하면서 한쪽 귀에 이어폰을 꽂고 김현옥 교수님의 유튜브 영상을 들었습니다. 차분한 목소리톤이 마음에 위안이 되었습니다. 정신과 상담을 받으면서 제 마음에 대한 이야기를 스스로 들어주는 것에 관심이 생기기도 했고 제 주치의 선생님이 초반에 권하신 대로 유튜브의 여러 정신건강의학 채널을 보기 시작하다 몇몇 채널은 구독도 하게되었지요. 제가 즐겨보는 채널은 지나영선생님, 최근은 김현옥 교수님, 뇌부자들 등등 입니다. 오늘은 김현옥 교수님의 트라우마에 관한 영상들을 들었어요. 과거에는 트라우마 치료를 할 때 기억을 꺼내 언어로써 상기시키고 치료하는 방법을 주로 사용했지만 요즘의 트라우마 치료 추세는 자신도 모르게 신체에 저장된 트라우마를, 신체 감각을 이용해 안정화시키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호흡법을 강조하셨어요. 오늘 오전에 제가 상담치료를 받을 때에 저는 선생님께 과거의 기억을 잊고싶다고 했고, 선생님은 '잊어야 할까요?'라고 반문하셨습니다. 잊는 것과 치료되는 것은 다른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드네요. 이미 일어난, 나에게는 중대한 그 일들을 잊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또 잊어서도 안되는 것이라고 일을 하며 생각했어요.

 

3. 일이 끝나고 피부과에 가서 1년 3개월 만에 엑셀브이 시술을 받았습니다. 병원에 가니 피부과 선생님께서 저에게 작년 6월에 받았었네요 라고 말씀을 해주시더라고요. 그때가 남자친구 부모님을 처음 뵙기 일주일 전 쯤이었어요. 평소에 피부에 붉은 자국이나 잡티 같은게 신경쓰여 더 깔끔한 이미지로 보이고 싶어 한번 받았던 적이 있네요. 엑셀브이는 3회에서 5회는 해줘야 효과가 나타난다는데 당시엔 연속으로 치료를 받을만한 여유가 훨씬 없었어요. 오늘은 총 3회짜리 결제를 하고 왔어요. 왜냐면 11월에 저는 결혼식을 하기 때문이에요. 받고싶어도 못받았던 때보다는 오늘 딱 3회차를 결제해버린 것이 훨씬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시술도 빨리 끝난 편이었어요. 집에 오자마자 샤워를 하고 감정일기 블로그를 개설했어요. 그런데 처음 써보는 것도 아닌 이 일기가 왜이렇게 어색할까요. 사건, 생각, 감정 순으로 적는 것도 잘 지켜지고 있는건지도 모르겠고요.. 초반에는 그걸 최대한 의식하며 적어봐야 습관이 될 것 같아요.

 

오늘은 잘 자고싶어요. 잠을 새벽까지 자지 못하면 다음날 손끝 발끝까지 온 몸이 아프거든요. 두드려 맞은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어릴때 수구려 앉아 온 몸을 몽둥이나 옷걸이, 나무 회초리 등 집히는 것들로 맞았던 것처럼요. 그때 내가 할수있는 것이라고는 회초리를 손으로 막다가 손가락 마디가 더 아팠던 것말곤 없었던 것, 울면 더 맞고 혼나서 울지도 못했던 것, 일그러지는 표정과 무력함, 나약함이 스스로를 파고들어서 작게 더 작아지게 만들었던 것, 온 몸이 너무 아팠던 것, 막지도 못해 당했다는 수치심이 온 몸을 감쌌던 것이 떠올라요. 어깨는 움츠러들고, 벽에 등을 꼭 붙이고 쪼그려 앉아 흐느끼다가 우는 소리라도 나면 다시 방안으로 들어와 나를 잡아먹을듯이 소리치며 울지 말라고 다시 혼내던 엄마의 모습, 공포에 질린 작은 아이였던 나, 아무도 도와주지 않고 그 누구도 없던 집, 설령 같이 집안에 있어도 텔레비전만 보던 아빠, 교육의 일환이라고 방치했던 모든 어른들, 그리고 외로웠던 나, 슬픈 감정을 말할 수 없던 나, 그것이 나를 위한 일이라고 정말 끔찍하게도 믿었던 나, 엄마가 회초리에 써놓은 사랑의 매 라는 말을 믿었던 나, 엄마를 너무 사랑했던 나, 불쌍한 어린 아이, 빼짝 마른 1학년, 그 아이를 오늘 더 안아주고 싶습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