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생각-감정

1.
사건: 분명 어젯 밤 아주 오랜만에 일찍 잠이 들어 기뻤는데 새벽에 깼다.
생각: 왜 이렇게 빨리 깼지? 역시나 푹 자는 건 불가능한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일 중에 하나인 잠 자는것조차 이렇게 힘들어야 하는걸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감정: 제대로 잠도 못자는 것이 억울했고, 서글펐다. 몸은 힘들고 피곤한데 푹 자고싶어도 잠이 안오는 것이 화가 나기도 했다.

2.
사건: 시식을 하러 갔다.
생각: 남자친구는 스케줄이 있어서 두번째 시식인 오늘은 혼자서 가야 했지만 그래도 우리의 일을 한다고 생각했고 잘 파악하고 와야지 라고 생각했다.
감정: 체크해야 할 사항들을 잘 체크하고 시식도 잘 끝내서 뿌듯했다.
*이 글을 다시 읽는데, 내가 정말로 결혼을 할 수 있는걸까 하는 의구심도 들었다. 다가오는 결혼식이 설레고 기분좋게 떨리는 게 아니라 결혼식을 아예 못 치르게 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불안감에 계속 휩싸여 있는 나 자신을 보게되었다. 왜 나는 긍정적인 미래를 믿지 못하는걸까? 나에게는 좋은 일이 올 리가 없다는 강력한 믿음이 나를 옭아맨다. 매일매일. 나는 그럴 자격이 없어, 너는 초라할거야 라는 목소리.

3.
사건: 청첩장을 전달하기 위해 ㄷㅅ님을 만났다.
생각: ㄷㅅ님과 오랜만에 만나 밝고 차분하고 긍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싶었다. 사람들과 대화할 때 어두운 표정이 드러나 불편하게 할까봐 걱정이 되는데 ㄷㅅ님을 만나기 직전에도 약간 걱정이 되긴 했다. ㄷㅅ님을 불편하게 하지 않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정: 밝고 텐션이 높은 모습은 아니더라도 차분한 모습을 유지하는 것에도 약간의 애를 써야한다는 것이 조금 버거웠다. ㄷㅅ님을 오랜만에 보아서 너무 반가웠다. ㄷㅅ님 얼굴이 생기있어 보여서 내 마음에도 활기가 생기는 것만 같았다. 평상시 내가 다운되어있는 모습을 들키면 상대방을 우울하게 만들까봐 안그런 척 하는 데 에너지가 들어가는게 억울했다.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편안하게 해주고싶었다. ㄷㅅ님과 있는 시간이 정말 소중하다고 느껴졌고, 오랜만에 만나는 만큼이나 좋은 모습으로 남고싶었다.

*ㄷㅅ님을 기다리면서 카페에서 쓴 글.
내가 요즘 떠나고싶구나. 왜 떠나고싶지? 난 항상 떠나고싶어했으니까. 그런데 내가 가고싶은 곳은 내 마음속에나 존재하는 것 아니야? 다른 나라에 그렇게 가고싶었던 이유는 이 현실이 싫어서 도망가고자 함이었다. 만약에 갔다면? 그리고 나는 지금도 언제든 떠날 준비가 되어있는데. 내가 도망치고 싶은 곳은 여기와 다를까?


결혼준비를 하며 양가에서 이런 저런 일들을 정하고 있다. 상견례 날짜, 장소, 혼주한복대여문제 등, 그리고 나와 남자친구는 각자 시식도 하고 같이 살 집도 알아보며 지내고 있다. 곧 떠날 신혼여행도 준비하는 동시에 친한 지인들을 만나 결혼식에 초대하기 위해 직접 청첩장을 주면서 맛있는 밥도 먹고 시간을 보낸다. 부케도 준비해야 하고, 피로연 때 입을 말끔한 원피스도 구입해야 한다. 집은 찾아보는 대로 바로 날짜를 맞춰 계약할 준비도 해야한다. 이런저런 일들이 많다. 나는 올해 안에는 전시도 열고 싶었는데 자신은 없다. 매년 이런식이다. 너는 절대 할 수 없어 너는 못해. 넌 하면 안돼 라는 목소리가 그림을 그리려 할때마다 들려온다. 그 목소리에 진 적이 더 많다. 정작 그림을 그리기 시작할 때는 아무 생각이 없을 때였다. 생각해보면 그랬다. 그냥 저걸 그리고 싶어 라는 생각이 들 때 손이 움직였고 책상앞에 이젤앞에 앉게되었던 것 같기도 하다.. 자꾸 거창한 계획을 세우고 깔끔하게 정리하려 하면 할수록 할 수 없다는 생각도 커져갔다. 결혼식이 끝나면 나도 새로운 터전에서 일을 다시 구해야 한다. 그것과 동시에 내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란 걸 만들어낼 수 있을까? 확신이 없다. 나는 못할 것 같다. 그리고 나는 세상에 내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두렵다. 작품은 꼭 내 이야기를 직설적으로 담지 않아도 되지만 어쨌든 작품을 통해 어떤 메세지는 전달될것이다. 그 매개체를 만든다는 것이 왜 두렵지. 왜 겁나지. 비웃음 당할 것 같지. 아니, 비웃으면 어때서. 나는 왜 숨고싶지. 못할 것 같지. 그것만이 전부라고 믿었었는데 왜 지금은 이렇게 초라하지. 그 세계 앞에서 왜 갈망하고 야망을 갖기를 포기해버렸지. 왜 좌절했지. 왜 평범하려 하지. 평범하려 하다가 평범 근처에도 못 가고 있는데. 왜 눈에 띄고싶지 않아하지, 그것도 절대로. 내 목소리를 죽이고있지. 왜일까. 너는 그러면 안돼, 그래 난 그래선 안돼 라는 목소리가 계속해서 마음과 머릿속에 들려온다. 그렇게 하면 넌 불행해져. 그렇게 하면 넌 죽을거야 라는 메세지. 하지만 동시에 너무나 원하는 마음. 이상하고 혼란스럽다.

오늘은 심리학 관련 영상을 시청하지 않았다. 한번 쭉 듣고 나면 다음날 연속으로 듣는 것이 조금 힘들어서 쉬어가야한다. 상담치료를 받고 나면 그 당일과 그 다음날 정도 까진 계속 기분이 우울하고 침체된다. 내가 했던 말들에 대해서 생각해보게된다. 그리고 나도 몰랐던 내 안의 이야기를 꺼내고 나서 그 문제와 하루 이틀 정도 계속 마주하게 된다. 그래서 더 괴롭나보다. 그렇지만 그 괴로움을 맞딱드리고 나면 내가 조금 더 성장하는, 성숙해가는 느낌이 든다. 잠깐이지만 내가 마치 성숙한 어른이 되는 것 처럼 느껴지고 그 기분이 좋다. 이런게 상담치료의 과정이고 효과인가 하는 생각이 오늘 잠시 스쳐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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